인천 아시안 게임이 19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6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축제의 개막식만 보면 이 축제가 스포츠 축제인지 한류 축제인지 알 수가 없다. 개막식만 놓고 본다면 한류축제에 스포츠 스타들이 들러리를 선 느낌이다.

일단 성화 최종 주자가 한류스타로 불리는 배우 이영애라는 것에서 부터 그렇다. 물론 지금까지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스포츠 스타가 아닌 성화 최종 주자로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대회는 이번이 역사상 처음이다. 동계올림픽에서 3회가 있었으나 그도 연예인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번 개막식을 연출한 영화감독 임권택과 장진은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한 것 같다.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은 임권택은 개막식 후 “지난 국제대회를 보면 자국의 위상을 엄청난 예산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쪽으로 해왔고 너무 경쟁적으로 임했다.”며 “개폐회식을 통해 자국을 자랑하는 세태로부터 평화롭고 정이 흐르는 대회를 치를 수 있도록 차별화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은 출연한 한류스타들의 출연료가 어느 수준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누구라도 저예산 개막식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출연한 연예인들은 아이돌그룹 엑소, 배우 장동건, 김수현, 현빈, 가수 JYJ, 그리고 싸이… 여기에 성화 최종 주자로 배우 이영애 등이었다. 물론 박세리(골프) 이봉주(마라토너), 임춘애(육상)가 태극기 기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류축제에 초대된 들러리 같았다.

또 이승엽(야구), 박인비(골프), 이규혁(스피드 스케이팅), 박찬숙(농구), 이형택(테니스) 등이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했는데, 이들의 참여도 개막식의 한류 축제에 묻혀버렸다. 특히 엔딩은 더욱 그랬다. 엔딩곡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열창한 ‘아시아드의 노래’와 ‘아리랑’이었다. 이 노랫말은 시인 고은이 썼다. 그러나 이 또한 한류 스타로 불리는 아이돌그룹과 싸이 등의 K-팝에 묻혀버렸다. 가히 한류축제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행사였다.

 

이번 대회 슬로건는 ‘나눔과 배려, 소통과 화합’이다. 스포츠는 남녀노소가 다 즐기는 오락이다. 그런데 K-팝을 문화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장년층 이상에게 어디서 소통과 화합을 찾으라는 말인가? 아시아인들의 스포츠 축제인데 스포츠 영웅들을 위한 배려와 화합은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그래서 이 개막식을 역대 최악의 개막식이라고 말해도 악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행사를 마치 ‘한류 콘서트’와 ‘영화제 시상식’처럼 만들어버린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영화감독 임권택과 장진의 포퍼먼스를 그대로 용인한 대회조직위의 책임자들의 머리는 어디로 갔을까? 가히 역대 최악의 개막식으로 남을 만하다. 88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 소년을 페러디한 굴렁쇠 소녀를 보면서 이 개막식에 독자적 창안은 없었다는 것만 더 확인했다. 임권택 감독의 저예산 개막식 쉴드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특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성화 최종 주자는 끝까지 베일에 가려진 비밀주의가 지켜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깜짝 등장한 최종 주자는 언제나 개막식 뉴스의 하이라이트다. 이런 극적인 장면의 연출은 곧 여타 비판적 개막식 시선을 돌려세우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성화 최종 주자가 나타나서 성화를 점화하는 것은 개막식의 꽃이다.

그런데 이처럼 비밀보완 유지가 필수인 마지막 주인공이 사전에 공공연하게 유출됐다. 개막식 전날(18일) 오전 취재진에게 해설자료로 배포한 내용에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중국에 초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나눔과 봉사를 통해 아시아의 화합에 기여한 인물”로 소개되었다. 조금만 관심이 있는 기자라면 그가 배우 이영애라는 사실은 알 수 있도록 한 친절한 설명이었다.

그러니 최종 주자가 나타났어도 감흥이 없었고 당사자인 이영애도 뻘쭘했다. 그리고 이 하이라이트는 뉴스의 초점에서 벗어났으며, 이영애는 이날 출연한 동료 연예인들과 동급으로 처리되었다. 그런데 이런 실수보다 더 황당한 것은 왜 그가 성화의 최종 주자였는지다. 조직위는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왜 영화배우를 최종점화자로 선택했는지. 그도 스포츠와 아무 관계가 없는 인물인지…

대회 조직위는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중국에 초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나눔과 봉사를 통해 아시아의 화합에 기여한 인물”이라지만 그는 배우다. 지금 우리는 아시안게임의 초점을 수영스타 박태환과 중국의 쑨양의 대결에 맞추고 있다.

만약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을 받는 스타를 픽업한다면 박태환과 쑨양이었을 경우는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 뉴스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뉴스로 타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천 아시안게임에 대한 관심은 국제적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무슨 개막식이 그따위야?” 내가 이 개막식을 연출한 감독이나 조직위에 해주고 싶은 말이다.